상처와 별이란 단어 사이에도 그렇게 걸어야만 하는 험난한 광야가 있습니다. 그래서 삶의 자리에서 이 두 단어를 연결하는 일은 마치 길 없는 광야를 헤매는 일과 같았습니다. 바른길을 찾았다기보다 그른 길에서 얻는 깨달음이 더 많은 시간이었습니다. “상처가 별이 될 수 있을까?”라는 문장은 저희에겐 간절한 꿈이면서도 여전히 난감한 화두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 화두를 풀어내보려고 탈출기를 세세히 읽었습니다. 저는 길을 찾고 싶었습니다. _5쪽
그러고 나서야 하느님은 모세가 해야 할 일들을 세세하게 알려주셔. 이제 새롭게 시작하는 모세의 열정은 예전처럼 무계획으로 뛰어드는 불안한 무모함이 아닐 거야. 이스라엘 원로들에게 찾아가서 하느님의 계획을 알리고 그들과 함께 파라오를 찾아가 광야로 내보내 줄 것을 청하는 일, 하지만 파라오가 허락하지 않을 거란 사실, 그러면 하느님이 이적을 일으켜 이집트를 치고 난 뒤에야 이스라엘 백성을 놓아주게 될 거란 사실, 떠날 때는 이집트인들의 재물을 들고 나올 거란 사실을 알려주고 계셔. 활동 계획서 같아. 세세한 설명이지. 이미 계획을 세웠고 그 세세한 걸음 하나하나를 함께할 것이니 이제 함께 시작하기만 하면 된다는 거야. 불안한 모세는 이렇게까지 준비한 하느님을 믿고 따라나설 수 있을까? _55-56쪽
모세를 봐. 하느님께 질문하고 거부하고 투정하고 뺀질거리고 있어. 하느님은 그런 모세와 집요하게 대화하고 있고. 모세와 하느님의 대화를 보면 하느님이 전혀 권위적이지가 않아. 오히려 모세의 한 걸음을 위해 하느님이 더 애원하는 느낌이 들지 않니? 대화는 간절한 사람이 밀리게 돼 있어. 이렇게까지 모세를 설득하시는 하느님의 모습은 그만큼 당신 백성을 고통 중에서 건져내시고자 하는 간절함 때문일 거야. 그만큼 하느님이 더 아프시기 때문이지. _64쪽
모든 소명은 사랑에 대한 요청입니다. 모세의 소명도 그러합니다. 히브리인들의 고통을 하느님의 마음으로 들어야 하고, 그들을 고통에서 건져내기 위해 하느님과 함께 걷는 길입니다. 그래서 소명은 사랑과 같은 운명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사랑이 상처를 받는 일이라면 소명도 그렇습니다. 상처로 인한 갈등 속에서 성장해 나가겠지요. 모든 사랑이 한 번의 선택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면 소명도 그렇습니다. 계속된 선택을 통해서만 성장하고 완성되겠지요. 결국 모세 역시 소명으로 인해 상처받을 것이고 그 안에서 더 깊은 선택을 해야만 할 겁니다. _67쪽
다 놓아버리고 싶었던 순간에도 곁에서 들꽃처럼 웃고 있는 아이들 모습 때문이었을까? 함께 있다고 되풀이하던 하느님의 그 목소리 때문이었을까? 그렇게 지나가더라. 그 모든 순간에 나도 내 삶과 소명이란 걸 수많이 반복해서 확인하고 있었을 거야. 확인할 수밖에 없었겠지. 그래야 걸을 수 있었을 테니까. _92쪽
왜 이런 광야의 여정이 필요한 걸까요? 지난 것들을 다 버리고 다 끊어버린다면 우린 누구나 아무것도 없는 광야의 여정에 들어설 수밖에 없습니다. 다 버리고 다시 새로운 것으로 채워야 하는 과정이지요. 이집트 생활의 모든 것을 버리고 다시 태어난 이스라엘 사람들이라면 그들은 아무것도 없는 광야에서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아야만 할 겁니다. 하느님은 그걸 가르치시려나 봅니다. 다행히도 이렇게 고된 여정은 그들만의 여정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여정이기도 합니다. _168-169쪽
너희도 이런 체험과 성취를 이루고 있는 거니? 아이들과 함께 지낸다고 체험이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아. 잘못하면 다만 경험만을 쌓게 돼. 이런 경험은 조금 색다른 관광일 뿐이야. 우리가 누군가의 상처와 가난을 관광하며 살아서는 안 되잖아. 아이들 속에서 하느님을 체험하려고 항상 노력하자고. 그러면 체험은 어떻게 하는 거냐고? 체험은 먼저 사건 속에 온전히 들어서야만 얻어지겠지. 그리고 체험은 주관적인 거라서 경험들을 올바로 또 깊게 성찰하는 과정에서만 얻게 될 거야. _193쪽
하느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사제들의 나라, 거룩한 민족이 될 거라고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 거 같다.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또 다른 아픔들을 사랑하는 꿈을 꾸시려는 거야. _212쪽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과 사랑의 계약을 맺습니다. 약속이 아니라 계약이라는 것은 주고받을 것을 명확히 하자는 뜻이 아닙니다. 사랑에 대한 충실한 의무를 표현하려는 것이지요. 사랑은 약속만으로 지켜질 수 없으니까요.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과 변하지 않는 사랑을 꿈꾸고 있습니다. 적어도 서로가 서로를 버리지 않을 사랑을 만들고자 합니다. _258쪽
우리 아이들은 어디쯤 서 있는 걸까? 아이마다 조금씩 걸음의 차이가 있겠지. 하지만 어느 단계에 있든 중요한 것은 하느님과 함께 걷고 있느냐는 거야. 상처투성이 삶을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이 별이 되려면 무엇보다 하느님의 손을 놓으면 안 되는 거잖아. 우리 아이들도 그럴 거야.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그 손을 너무도 쉽게 놓아버리거나 놓쳐버려. 세상의 욕심들과 유혹들에 금세 휘말려버리는 게 우리 아이들이라서 우리를 힘들게 하고 지치게도 하지. 그래서 우리 아이들에게는 정말 모세와 같은 사람이 꼭 필요할 거야. 하느님의 손과 백성의 손 모두를 꼭 부여잡고 있는 사람 말이야. _31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