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공 치하에서 외국인 선교사들 추방과 강제 노동 수용소의 선교사들

서양자 수녀 순교의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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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416쪽 / 0g / 15.5*22.4cm
ISBN 9788985151320
책소개

이 책은 1921년 중국 공산당이 창립된 후부터 1957년 중국 애국교회가 성립될 때까지의 교회의 파란만장한 역사가 적혀있다. 중국 공산당이 창립되면서 공산군들에 의해 교회 재산을 약탈 당하고 선교사들이 살해되었다.중일 전쟁 기간 선교 사업은 대 타격을 받았으며 교회에 피해가 상당히 컸다. 일본 군인들이 교회에 들어와서 약탈을 하고 성직자들과 교우들을 살해했으며, 일본의 폭격으로 교회 건물들이 많이 파괴되었다. 당시 중국에서 천주교는 동네북 이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되면서 중국에서 사목을 하던 5천여 명의 외국인 선교사들이 추방되어 홍콩으로 왔다. 선교사들이 감옥에서 고문을 많이 당하고 고생을 많이 하여 홍콩 사람들이 말하기를 "대륙에서 추방되어 홍콩에 온 선교사들이 여반사지인(如半死之人)이 되었다."라고 했다. 선교사들이 심한 고문을 받은 상처가 그대로 있었고 어느 선교사는 홍콩에 도착하자마자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갔으며 또 어느 선교사는 추방되어 홍콩으로 가는 도중 서세했다.

 

교황청과의 단절을 거부하고 애국 교회에 들어가지 않은 중국 선교사들은 강제노동 수용소로 보내 영하 30도나 되는 추운 곳에서 겨우 생명을 유지할 정도의 소량의 음식을 먹고 하루 12시간 노예노동을 했는데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전부 인해전술(人海戰術) 식으로 하였다. 선교사들은 수인들을 보살펴주고 사랑하여 강제노동 수용소의 빛이 되었으며 성인 성직자들도 있었다.

 

중국의 강제노동 수용소도 바로 구소련의 강제노동 수용소에서 모방한 것이며 북한의 교화 수용소의 원조는 바로 구소련의 강제노동 수용소이다. 일본의 징병으로 끌려갔다가 소련의 포로가 된 우리나라 병사 1-2만 명과 한국 전쟁 때 북한에 억류되었던 국군 포로 1만여 명이 시베리아 강제노동 수용소로 보내져, 영하 4-50도 이하로 내려가는 추위와 굶주린 상태에서 심한 노동으로 엄청나게 죽어갔다. 시베리아 강제노동 수용소를 죽음의 공장이라고 했다. 이 책에는 시베리아 강제노동 수용소의 비참한 생활상에 대해 적혀 있다.

 

중국 문화의 단면에는 무술 문화와 토비 문화(土匪文化) · 마적 문화(馬賊文化)가 있다. 중국은 과거에 세계 제1의 토비(土匪)의 나라였으며 중국에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토비들과 마적 떼들이 있었는데, 토비와 마적은 현재의 갱단과 다를 바가 없었다. 1930년대에 이르러서는 전 중국의 토비와 마적 총수는 줄잡아 2천만 명이 넘었다.

 

당시 사목은 원거리 사목, 순회 사목이었는데 신부님들이 나귀에 취사도구와 성서를 나귀에 싣고 사목을 다니다가 간단히 음식을 해서 먹고 노숙도 했는데, 토비들에게 약탈당하고 살해되거나 납치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중국의 토비들과 마적 떼들, 공산군들이 교회에 방화하고 약탈을 했으며 선교사들과 교우들을 살해하였다. 토비들과 마적 떼들, 공산군들이 외국인 선교사들을 납치하고 막대한 몸값을 교회에 요구하고 돈을 지불하지 않으면 선교사들을 살해하였다.

 

이런 사실들은 아직 한 번도 우리나라에 소개된 일이 없는 내용이다. 성직자, 수도자, 교우들이 한 번 읽어 볼 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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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지은이: 서양자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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